보수진영이 움찔했다. 그리고 발을 들여 놓았던 한나라당이 화들짝 놀랐다.

4.8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진영을 대표하며 범민주 개혁 후보로 나선 기호 2번 김상곤 후보(59ㆍ한신대 교수)가 보수진영의 대표 주자로 나선 기호 4번 김진춘 후보(69ㆍ현 교육감)를 여유있게 따돌리고 당선됐다.

김상곤 후보는 부천지역 3개 선거구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김 당선자는 원미구에서 1만7천638표를 획득해 47.2%의 지지율로, 1만127표(27.1%)를 얻는데 그친 김진춘 후보를 7천511표차로 앞섰다. 강원춘 후보는 4천501표(12.0%), 김선일 후보는 2천962표(7.9%), 한만용 후보는 2천160표(5.8%)를 각각 획득했다.

김 당선자는 소사구에서도 8천712표(45.0%)를 획득해 5천747표(30.0%)를 얻은 김진춘 후보를 2천965표차로 앞섰다. 강원춘 후보는 2천428표(12.5%), 김선일 후보는 1천499(7.7%), 한만용 후보는 975표(5.0%)를 각각 획득했다.

김 당선자는 오정구에서도 6천293표(46.7%)를 획득해 3천231표(24.0%)를 얻는데 그친 김진춘 후보를 3천62표차로 크게 이겼다. 강원춘 후보는 2천80표(15.4%), 김선일 후보는 1천95표(8.1%), 한만용 후보는 775표(5.8%)를 각각 얻는데 그쳤다.

부천시 3개 선거구를 합친 결과를 보면, 김상곤 당선자는 3만2천643표를 획득, 1만9천105표를 얻은 김진춘 후보와 1만3천538표의 격차를 벌렸다.

이번 경기도교육감 선거 결과를 들여다보면 부천지역 뿐만 아니라 대도시권 지역에 나타난 표심 향방이 진보성향 지지층은 흡입력이 무척 강한 반면, 보수성향 지지층은 뿔뿔이 흩어졌다.

김상곤 당선자를 지지하는 진보진영측 유권자들은 표가 분산될 수 없는 후보군이 형성돼 일찌감치 지지후보를 선택해 표결집을 이루도록 짜여진 선거구도였던 반면, 보수진영쪽은 4명의 후보로 표가 분산됐는데도 불구하고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 격으로 치부하며 승리를 예감한 듯한 안이한 선거운동으로 지지층 표분산을 막아내지 못한 채 호되게 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

물론 이번 경기도교육감 선거는 역대 교육감 선거 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12.3%)에다, 보수진영 후보 난립과 후보자 이름의 가나다순 기호 배정, 교육감 선거의 첫 주민직선제, 세계적인 불황으로 인한 어려운 경제여건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선거결과에 직ㆍ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경기교육의 변화와 공교육 강화 등을 열망하는 경기도민들의 뜻이 어느 정도 반영됐다는 점, 그리고 유권자들의 지지 성향에 있어서 보수든 진보든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교훈을 던져준 셈이다.

역대 선거에 있어서 투표율이 낮을 경우 보수 성향의 후보가 다소 유리하다는 등식이 비슷한 성향의 후보가 난립할 경우 특정 후보에 대한 표 쏠림 현상이 사라지고 유권자들의 표 분산, 선택의 자유로움이 드러났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는 소속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최근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구속)의 정.관계에 대한 전방위 로비와 공직자 재산신고 및 후원금 모금 현환 등을 지켜보면서 선출직 공직자들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선거(투표) 무관심을 부추기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김진춘 후보에 올인하다시피 했던 한나라당으로서는 당장 내년 지방선거까지 걱정을 안고 가야 하는 몹시 껄그러운 입장에 놓이게 됐다.

비슷한 성향의 후보들이 공천 후유증으로 인해 앞다투어 출마할 경우, 표결집 및 적극적인 투표 참여층이 강한 진보 진영쪽에서는 이번 경기도교육감 선거 결과를 지켜보면서 “한번 해볼만 하다”는 해석을 내놓으며 상당한 의미를 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상곤 당선자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기호 5번 송하성 후보가 선거전 초반에 당적 문제로 낙마한 것도 이번 선거에서 진보진영에서는 상당한 호재로 작용한 게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번 경기도교육감 선거구도와 결과가 보약이 될 수도, 사약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곱씹어 볼 대목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부천지역정가의 경우 민주당 소속 정치인 및 당원들은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전반적으로 한걸음 발을 빼고 지켜보는 가운데 특정후보에 대해 선택적 지지를 했던 관계로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다가오는 재보선 결과에 대한 기대치를 높일 수 있는 쪽으로 해석도 할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표심은 늘 변하기 마련이어서 선거전이 펼쳐질 때 전개되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권자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 가면 갈수록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선출직 공직자들은 늘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때만 되면 표를 구걸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선거에 의한 정치는 역시 살아서 부단히 움직이는 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