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15일 오후 2시 서울광장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천막당사 기자회견을 통해 “16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 대표와의 ‘3자 회담’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주요 의제는 국정원 등 국가권력기관의 정치개입 폐해가 돼야 하며,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문제에 대해 대통령은 분명한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한길 대표의 기자회견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유엔이 정한 세계 민주주의의 날에 저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마구 무너져내리는 상황 앞에서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밝고 정의로운 권력이 아니라 음습하고 무서운 권력이 공포정치가 엄습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 사이에는 이러다가 또 한번의 정보정치가 도래하는 건 아니냐고 우려하는 두려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검찰총장을 유신시대에도 없었던 사상 초유의 방식으로 결국 몰아냈습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등에 대한 진상규명을 방해하기 위한 긴급조치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 제 아버지는 유신시대 긴급조치 9호 위반사건 재심재판에서 37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재판부는 사과한다고 말했습니다. 제 개인사에 쓰라림과 회한을 말씀 드리는 게 아닙니다. 폭력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질식시킨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역사의 진보에 대한 저의 믿음과 구시대를 매듭짓고 새 시대를 열어야 할 우리 세대의 책임에 대해 다시 한번 다짐하자는 것입니다.

1970년대 어둠의 시대에 막대 줄자가 있었습니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할 때 막대줄자를 갖고 다니면서 국민을 선량한 시민과 불량한 자로 구분했습니다. 그들이 국민에게 요구했던 것은 순종이었고 굴종이었습니다.

지금은 미움과 증오의 줄자가 등장했습니다. 권력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가 있으면 느닷없이 잣대를 들이대며 죄가 있다고 단언합니다. 아니면 죄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죄가 없다면 죄가 없음을 입증하라고 합니다.

언론이 나서서 겁박하고 그래도 안되면 주홍글씨를 새겨 찍어냅니다. 법도 기준도 규칙도 사라졌습니다. 오직 굴종만을 요구합니다. 섬뜩함과 전율을 느낍니다. 이성적인 법관과 용기있는 검사, 영혼을 가진 공무원은 십자가를 져야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너희중에 죄가 없는 자가 있다면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이런 성찰이 아니라 나와 정권을 호위하지 않는 사람은 죄인으로 삼아 돌을 던지겠다는 공포와 야만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목표하고 있는 바는 분명해 보입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한 검사는 유죄이고 반대로 국정원은 무죄라는 것입니다. 국정원의 국기문란에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직접 관여한 바 없다고 하지만 이번에 검찰총장 사퇴시킨 반법치주의적 행태는 대통령의 재가 없이는 있기 어렵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 됐습니다. 그러나 오만과 배타와 증오의 바벨탑은 정의와 양심의 저항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지난 대선 전후해서 있은 국기문란 사건들로 나라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에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되지 않도록 국정원을 개혁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상황을 매듭짓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씀한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청와대가 갑자기 3자회담을 일방적 발표했을때 저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수용 여부를 고민했습니다. 다음날인 금요일 아침 3자회담에 응하겠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다만 국정원 개혁 등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담보되는 회담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발표하고 나서 불과 몇시간 후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앞장 서던 검찰총장을 사퇴시켰습니다. 국기문란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사실상 어려워졌기 때문에 3자회담이 무의미해졌다는 주장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일 3자회담에 응하겠습니다. 주요 의제는 국정원 등 국가권력기관의 정치개입 폐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총장 사퇴 문제 역시 연장선상에 있다. 이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대통령이 준비해주셔야 합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정치공작에 대한 경찰의 축소 수사가 은밀한 공작이었다면 채동욱 총장 몰아내기는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하기 위한 공개적이고 비겁한 국기 문란입니다.

민주당은 권력에 의한 검찰 길들이기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아울러 이 땅의 모든 양심있는 국민과 함께 어둠의 세력을 규탄하고 응징하는 범국민적 행동을 더욱 한층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고맙습니다.